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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한국의 '운'을 인프라로 승화시켜야단상 2020. 3. 31. 02:40
한국의 코로나19 대응을 두고 여러 곳에서 갑론을박이 있다(미통당 수준의 저열한 이의는 일단 재껴두자). 그중 '한국은 운이 좋았다'라는 말에 화를 내는 사람도 있다. '한국의 인프라가 훌륭했기 때문에 코로나19 초기 대응에 성공한 것인데, 운이 좋았다고 하는 건 이를 폄하하는 것이다'라는 주장이다.
내 생각은 이렇다. 한국은 운이 좋았다. 이는 비하가 아니다. 몇 가지 요소들(주민등록 시스템, 미세먼지 마스크 제조력, 메르스 경험, 발병 초기에 진단 꾸러미 제작 및 양산 성공 등등)이 '우연'하게 맞물렸기 때문에 코로나19 초기 대응에 성공한 경우라고 봐야한다.
한국의 인프라가 훌륭하다는 주장에는 의료보험이 빠지지 않는다. 한국의 의료보험은 다른 나라(특히 미국)에 비하면 괜찮은 것도 사실이이다. 그렇지만 한국의 의료 인프라는 좋은 편이 아니라는 말도 사실이다. 몇 가지 수치를 보자.
병원 중 공공병원 비율은 OECD 꼴지다. 2015년 기준 OECD 평균은 52.6%인데 한국은 1/10 수준인 5.8%에 그친다. 의료보험이 엉망이라고 하는 미국이 24.8%이고, 우리 다음으로 가장 낮은 일본도 한국의 세 배 수준인 18.2%이다. 전문인력도 턱없이 부족하다. 역학조사관은 100명이 채 안 되고(77명), 그 중 절반 이상이 비정규직이다(정규직은 32명). 미국 CDC 권고 기준을 적용하면 한국의 적정 인원은 348명이다. 1/3 수준이다.
그간 꾸준히 지적된 서울과 비서울의 의료 격차도 마찬가지다. '지방에 산부인과가 없다'는 말은 이 격차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메르스 때문에 널리 알려진 '음압병상'도 전국에 1027병상에 불과하고(이 중 국가지정병상은 198병상), 감염병 전문병원은 2017년에 두 곳이 추가된 게 전부다(전북, 충북, 강원에는 아예 없다).
이런 부족한 인프라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코로나19를 상대로 선방하고 있는 것이다. 최전방에서 헌신하는 의료진과 대다수 국민의 협조, 그리고 '운'이 뒤따른 결과다.
그래서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이 '운'을 '인프라'로 승화시키는 것이다. 인프라를 건드리는 데에 정치의 역할을 빼놓을 수가 없다. 그리고 국회를 구성하는 총선이 이제 보름 앞이다.
- 참조1: 의료의 질 높은 공공병원 확 늘려라, 김명희(시민건강연구소 상임연구원, 시사IN 제621호, 2019)
- 참조2: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현황과 과제(김남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보건정책연구실 선임연구위원, 보건복지 이슈앤포커스 제373호, 2020)
- 참조3: 지방 산부인과가 사라진다…산모 사망률 심각(윤나라 기자, SBS,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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