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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0일, 지정생존자”가 보여준 차별금지법의 현재
    단상 2019. 8. 14. 16:18

    ”60일, 지정생존자”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tvN 드라마 “60일, 지정생존자”(이하 “지생자”)가 차별금지법을 다뤄 화제가 됐다. 차별금지법은 ‘성별, 장애, 병력, 성적 지향, 고용 형태, 출신 국가, 인종, 사회적 지위 등을 근거로 고용·거래·교육 등의 영역에서 불합리한 차별을 금지하자는 법’ 으로 정확한 명칭은 ‘포괄적 차별금지법’이다. 13화·14화에서는 박무진 대통령 권한 대행(지진희 분. 이하 ‘대행’)이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려다가 포기하는 과정을 그렸다.

    드라마가 그린 차별금지법

    “지생자”에서 차별금지법이 처음 나온 것은 8월 12일 13화 방송분이다. 박 대행의 대통령 출마 선언 후 첫 일정. 영화 관람이라는 무난한 일정으로 대중의 눈도장을 찍으려던 박무진은 바로 옆에서 영화감독이 레즈비언으로 커밍아웃하는 바람에 들러리가 된다. 청와대로 돌아온 박 대행은 차별금지법에 대한 법령안을 준비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참모진이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반대하자 박 대행은 되묻는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마땅히 누려야 할 가장 기본적인 평등권이 아닌가요? 제가 뭘 더 고려해야 하는 겁니까?”

    (이 장면에서 홍성수 교수의 관련 논문이 등장해 설득력을 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홍성수 교수는 페이스북에 자신의 논문이 등장했다며 반가워했다.[^1])

    한편 대선 출마를 눈앞에 둔 오영진 국방부 장관(이준혁 분)은 기자회견을 열고 ‘동성애에 찬성도 반대도 하지 않는다’면서 차별금지법 제정에 반대를 선언한다. 이 사건 직후 대선 후보 지지율 조사에서 오 장관은 39.1%의 지지를 얻어 단숨에 대선 지지율 1위에 오른다.

    ‘차별금지법이 동성애를 조장한다’[^2] 같은 비논리적인 주장을 포함한 유림과 종교 단체의 반대에 부딪히면서 박 대행의 지지율은 떨어진다. 다음날 방영된 14화 방송분에서 결국 박 대행은 차별금지법 제정을 ‘다음 정부로 이양’하고 만다.

    이후 비밀리에 영화촬영장을 찾아 영화감독을 만난 박 대행은 차별금지법 제정을 포기한 것에 사과하고 대통령 당선이 되면 가장 먼저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겠다고 약속한다. 그러나 감독은 ‘선심 쓰지 말라. 당신은 의무를 다 하지 않았다’면서 박 대행의 선택을 비판하고 자리를 뜬다. 그제서야 박 대행은 자신이 그동안 혐오했던 기성 정치인처럼 행동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환경부 장관 시절, 팩트와 데이터를 근거로 의견을 제시해도 양진만 대통령은 정치적 이유를 앞세우며 묵살하거나 오히려 해임하지 않았던가.

    결국 “지생자”에서 차별금지법 이슈는 용두사미로 끝나고 말았다. ‘이슈는 이슈로 덮는다’는 말처럼 드라마는 곧바로 군부의 쿠데타 모의 등 마지막 화를 향해 치달으면서 차별금지법 이슈를 잠재웠다.

    “지생자” 차별금지법 에피소드의 의의

    누군가의 한탄처럼 드라마에서도 차별금지법은 제정되지 못했다. 정치적 선택이나 정략적 판단과 거리가 멀었던 박 대행은 첫 번째 정략적 판단으로 차별금지법을 포기했다. 그럼에도 “지생자”의 차별금지법 에피소드는 다음과 같은 의의가 있다.

    첫 번째로 케이블 인기 드라마에서 차별금지법을 정면으로 다루면서 여론의 관심을 환기시켰다. 12화 방영 직후 주요 포털의 실시간 검색어에는 차별금지법이라는 단어가 상위권에 등장했다. 아직 여론의 반응은 혐오와 차별이 넘치지만, 이 이슈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차별금지법이 UN 권고에도 불구하고 왜 10년이 넘도록 제정되지 못했는지 알게 됐다.

    두 번째는 앞뒤 재며 머리를 굴리기보다 돌을 맞더라도 팩트와 데이터가 있다면 ‘옳은 말’을 하고마는 박무진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차별금지법의 당위성을 역설했다는 점이다. “지생자”는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주장을 박무진을 통해 논파했다.

    세 번째는 그런 박무진이 차별금지법을 포기하는 역설적인 장면이다. 박무진의 선택은 차별금지법이 지킬 수 있는 다양성과 인권, 평등이라는 불변의 헌법가치가 고작 정치인의 표 계산 때문에 계속 ‘나중에’로 미뤄지고 있다는 점을 명징하게 보여줬다.

    “지생자”는 마지막 화까지 얼마 남겨두지 않았다. 마지막 마무리는 군부 쿠데타를 막고 대통령 선거를 성공적으로 치뤄내는 것으로 끝날 것이다. 그럼에도 “지생자”가 던지는 메시지는, 특히 차별금지법과 관련된 메시지는 대한민국 사회에 작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집권의 이유’ 생각해달라

    픽션과 달리 현실에서는 대통령과 국회, 여당이 멀쩡하다. 이들의 임기는 정해져있을지언정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와 혐오·차별에 노출된 사람들의 삶은 계속 될 것이다. 이들이 사람답게 살기 위한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국가는 평등이라는 헌법가치를 수호하고 보장할 수 있어야 한다. “지생자”는 차별금지법 이슈를 통해 현실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소수자·약자의 행복추구권을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박무진을 통해 지적했다.

    현실 정치인들이 드라마 속 정치인처럼 ‘정권 재창출’에만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정권을 왜 차지하려 하는지, 차지하면 무엇을 하려 했는지, “지생자”를 통해 잠시라도 고찰하길 바란다.

    각주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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